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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마 상황은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막의 태양 아래에서 꼼짝 않고 그늘 아래 서있느라 조금 체력은 깎여 나갔지만 그래도 심한 상태였던 야겐과 호타루마루가 그나마 기력을 회복한 것 같았다. 카슈는 여전히 중심 잡기 힘들어하며 헉헉대고 있었지만 그래도 움직이지 않고 꼼짝 앉고 있었으니 조금은 괜찮아 졌을 것이다.

더운 공기에 점점 빨개지는 다른 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던 이시키리마루가 애매모호한 얼굴로 제안했다.


“괜찮다면 다시 움직이지 않겠어…?”

“…그렇네. 여기서 가만히 있는다 한들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고.”

“카슈, 괜찮겠어?”


야겐이 물었다. 잠시 비틀거리던 카슈는 끄덕이며 긍정했고 남사들은 다시 움직이기로 하였다.

이시키리마루의 겉옷을 걷어내자 죽일 듯한 살기마저 느껴지는 태양빛이 강렬하게 남사들을 덮쳤다. 그 숨 막히는 열에 여지껏 묵묵히 나아가던 츠루마루마저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선두를 밟은 것은 야겐이었다. 카슈의 겉옷으로 다리를 꼼꼼하게 싸맨 그는 가장 먼저 발을 옮겼다. 그 뒤를 나머지 남사들이 차례대로 따라 천천히 걸었다. 어쩌지 방금 전보다 더욱 진군이 어려워진 느낌에 야겐은 눈살을 찌푸렸다.

쇼쿠다이키리는 계속해서 침을 삼켰다. 입안과 목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사막이니 당연한 일이다. 도검이니 수분부족으로 쓰러질 일 같은 건 어지간해서는 없겠지만 그래도 일단 사람과 비슷한 외모에 구조로 현현하고 있었다. 정말 이렇게 물 하나 없이 나아가다가는 수분부족으로 쓰러지는 일이 일어나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과 증상이 쇼쿠다이키리 한 명에게만 나타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지금 사막을 돌파하고 있는 1부대의 모두가 그리 생각하며 침을 삼키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군….”


금방이라도 혀를 찰 것 같은 얼굴로 츠루마루가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 사막에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걷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넓은 하늘과 그 아래의 사막뿐이었다. 뺨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츠루마루는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아무리 절망적이고 끝이 없다 하더라도 나아가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차라리 이렇게 나아가면서 뭐라도 찾는 것이 가만히 앉아 구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남사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카슈, 혼마루로의 연락은…?”

“…안 돼. 여전히 먹통이야.”


품속에서 작은 기계를 꺼내든 카슈는 화면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기계는 여전히 지직거리고 있었다. 그에 호타루마루는 투덜댈 기력도 없어 그저 혀로 입술을 축이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카슈의 대답 이후로는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묵묵히 걸어나가는 남사들의 눈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하고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할 때 두 마리의 낙타가 끌고 있는 마차 한 대가 그들 앞에 멈춰섰다.

이미 선두의 야겐이 지칠대로 지쳐 무릎을 붙잡고 멈춰있을 때였다. 마부석에 앉은 터번을 두른 청년이 깜짝 놀래 소리를 질렀다.


“뭐, 뭐야, 당신들?!”

“…환각?”


비틀거리던 야겐이 앞으로 픽 쓰러졌다. 야겐을 돕기 위해 츠루마루와 카슈가 앞으로 나섰고 이시키리마루는 멍하니 소리를 지른 청년을 바라보았다. 쇼쿠다이키리는 눈에 초점이 없고 흐릿한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마부석에 앉은 청년은 혼란스럽게 남사들을 바라보다가 훌쩍 뛰어내려 비틀거리는 카슈를 부축했다. 그러고는 멍하니 서있는 나머지 남사들을 바라보며 빽 소리질렀다.


“뭐해?! 사막에서 죽을 일 있어?! 마을까지 데려다 줄 테니까 어서 타!!”

“…고맙다.”

“뭘! 돕고 살아야지!”


청년이 혼란스러운 얼굴 그대로 카슈를 마차 뒷칸에 태우고는 차례차례 남사들을 마차의 뒷칸에 태운 청년은 바로 움직이지 않고 남사들에게 물까지 한 번 씩 마시게 하며 어느 정도 그들이 정신을 차린 것 같자 물었다.


“이 무리의 대장은?”

“나, 카슈 키요미츠다.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그런 건 됐어! 너희들 왜 이런 곳에서 얼쩡거리고 있던 거야? 옷차림을 보니 마을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외지인이 사막에는 도대체 무슨 용건?”


약간 가시돋힌 청년의 말투에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지은 카슈는 슬쩍 쉬고 있는 다른 남사들을 돌아보았다. 츠루마루와 쇼쿠다이키리는 눈을 감고 편안하게 마차에 기대어 쉬고 있었고 야겐은 바로 눕혀져 있었다. 이시키리마루와 호타루마루는 아직까지 물을 마시고 있는 중이다.

슥 다섯을 돌아본 카슈는 곤란한 얼굴 그대로 현재 자신들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부라고 해도 그것은 어느 정도의 진실을 숨긴 채였다. 아무리 정신이 지쳤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도검이고, 시간역행을 하다가 사막에 불시착해버렸다는 망상 같은 이야기를 처음보는 인간에게 털어놓을 만큼 카슈는 단순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진실을 가리고 거짓을 섞은 이야기는 여전히 허무맹랑한 동화 같은 이야기였지만 청년은 진지한 얼굴로 들어주었다. 그러고는 이야기가 다 끝나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알았어. 큰일이었겠네. 눈을 뜨고 보니 사막이라니….”

“믿어 주는 거야…?”

“그럼 당사자의 말을 믿지 누굴 믿어? 일단은 마을까지 데려다 줄게.”


담담하게 얼굴에서 유일하게 들어난 큰 눈을 깜박이며 청년은 폴짝 뛰어내려 마부석으로 향했다. 그를 복잡한 얼굴로 바라보던 카슈는 뜨겁게 익은 제 본체를 살살 만지작거렸다. 사람 모습이라서 참 다행이었다. 검의 모습, 철의 모습으로 이 아래에 3시간 동안이나 있었다간 정말 죽었을 것이다.

좋은 인간을 만나서 다행이야. 그렇게 안심하며 카슈는 뒷칸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조금이라도 기력을 회복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제 멋대로 되지는 않았다.


“카슈, 잠깐 이리로. 쇼쿠다이키리의 상태가 이상하다.”

“쇼쿠다이키리가? 왜?”


카슈는 움직이기 시작했는지 조금씩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엉금엉금 기어 대각선 방향에 있는 츠루마루와 쇼쿠다이키리 쪽으로 향했다.

츠루마루의 어깨에 기대 정신을 잃은 쇼쿠다이키리의 얼굴이 여전히 붉었다. 츠루마루도 카슈도 이시키리마루나 호타루마루도 아직 붉은 얼굴이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뭔가 쇼쿠다이키리의 얼굴색은 시간이 흐를 수록 점점 더 붉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끙끙 앓는 것 같은 쇼쿠다이키리의 뺨에 손을 댄 카슈는 자신과 똑같이 뜨거운 온도에 손을 떼고는 츠루마루를 바라보았다.


“이상하다니, 뭐가?”

“열이 끓는 것 같다.”

“으엑? 기분 탓 아냐? 우리 모두 다 뜨거운 상태인데….”


카슈는 자기 뺨에 손등을 대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이해한다는 듯이 츠루마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찌 봐도 호흡이 이상해서 말이지.”

“호흡…?”

“아아. 잠깐 실례하지.”


츠루마루는 그렇게 말하면서 쇼쿠다이키리를 제 어깨에서 떼어내 카슈의 어깨에 기대도록 했다. 카슈는 축 늘어진 쇼쿠다이키리가 넘어지지 않도록 어깨를 붙잡으며 가만히 그 불규칙한 호흡을 들었다. 확실히, 조금 느리고 불규칙한 게 아픈 것 같기도 하다.

걱정스런 표정으로 쇼쿠다이키리의 어깨를 붙잡은 카슈는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가 정상적으로 역행한 장소였다면 당장이라도 철수해서 부대를 재편성하면 될 일이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여긴 사막. 어느 국가의 어느 지역인지도, 어느 시대인지도 모르는 사막의 한복판이다. 혼마루로의 철수가 그리 간단하게 이루어질 리 없다.

카슈는 꾸물꾸물 움직여 벽에 등을 기댄 후 미묘하게 바닥과 가까워진 쇼쿠다이키리를 눕혔다. 야겐은 쓰러졌다. 언제 다시 일어나고 다 회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야겐을 제한다면 1부대에는 병에 다식한 남사가 없었다. 이시키리마루가 있었으나 그는 병의 치료보다는 예방에 특화되어 있어 현재로서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눈썹을 찌푸린 채 작게 끙끙거리는 쇼쿠다이키리를 바라보던 카슈는 고개를 들어 야겐쪽을 바라보았다. 이시키리마루와 호타루마루가 이마와 뺨을 짚으며 열을 가늠하고 있었다.

카슈는 무력한 상황에 입술을 깨물었다. 생각해 보니 쇼쿠다이키리는 바로 저번 출진에서도 꽤 무리를 했었다. 쉬지도 않은 채 바로 출진을 했는데 이런 극한 상황이니, 탈이 나지 않는 게 이상하다.


“뭐어, 카슈! 그렇게 심란한 얼굴하지 마라. 우리 쪽에서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분명 혼마루도 마찬가지로 우리 쪽에 연락하지 못하는 상황이겠지. 주인은 꽤 행동력이 좋은 녀석이니 지금 쯤 우리를 구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지금 이 상황이 이상 사태임에는 틀림없다만 그런 얼굴을 할만큼 절망적인 것도 아니다. 분명 구원은 빠른 시일 내에 올 거다.”

“…그렇겠지.”

“그렇고말고. 그러니까 너무 시무룩해지지 말란 위로다, 부대장. 이 부대에서 가장 출진 경험이 많은 네가 그렇게 갑자기 기운 없어져 버리면 모두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나.”


그리 말하며 츠루마루가 톡톡 가볍게 카슈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깨에 와 닿는 가벼운 손길에 카슈는 힘없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숙여 누워있는 쇼쿠다이키리를 바라보았다.


“이제 곧 마을에 도착하니까 조심해라?!”

“알았다! 조심하지!”


츠루마루가 선수를 쳐 크게 대답했다. 이제 곧 도착하는 것이면 도착인 거지, 도대체 무엇을 조심하라는 것인지 불명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말로 들을 필요도 없이 곧 남사들은 알 수 있었다.

마차가 뒤집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울 정도로 크게 내부가 흔들렸다. 그 흔들림에 데굴데굴 구른 야겐은 눈을 떴고 쇼쿠다이키리가 신음을 뱉었다. 물론 다른 이들이라고 해서 멀쩡한 건 아니고, 카슈와 츠루마루는 서로 머리를 부딪혀 부딪힌 머리를 싸맨 채 쭈그리고 있었고 이시키리마루는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고 호타루마루는 성대하게 엉덩방아를 찧고 데굴데굴 굴러 벽에 쳐박혔다.


“뭐야?!”

“그러니까 조심하라고 했잖아!”

“이런 거면 좀 더 구체적으로 조심하라고 경고해!!”


얼마나 세게 부딪힌 건지 골이 울리는 머리에 카슈는 평소대로 버럭거리며 딴지를 걸었다. 츠루마루는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쩔 수 없잖아! 바로 앞이었는데!”

“아, 진짜…!”

“카슈, 의외로 철과 같은 머리를 가지고 있구나….”


하?! 원래 철이니까 당연한 거 아냐?! 으으, 거리는 츠루마루에게 흥분하여 버럭 소리를 지른 카슈는 씩씩대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시키리마루는 부딪힌 머리를 문지르며 허허, 웃었고 호타루마루는 은근 그 자세가 편한지 움직이지 않고 그저 멍하니 허공을 바라만보고 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물론 마차에 실릴 때 쓰러져 아무런 정황을 모르는 야겐은 그저 삭식이 쑤시고 어리둥절할 뿐이었지만 말이다. 힐끔 쓰러진 쇼쿠다이키리를 확인한 츠루마루는 아무런 문제없다는 것을 알고 야겐에게 평소처럼 거창한 말투로 설명을 시작했다.


“좋은 사람과 만나 다행이네. 그건 그렇고 설마 마을의 반대편을 향하고 있었을 줄이야….”

“그 점은 어쩔 수 없지. 우리에겐 지도도 나침반도 가이드도 없었으니 말이야!”

“그래서 지금은 마을의 안인가?”

“어? 무시?”


츠루마루가 약간 상처 받았다는 뉘앙스로 중얼거리든 말든 야겐은 벌떡 일어나 천막을 걷고 밖의 풍경을 보았다. 마을은 활기찬 분위기였다. 이리저리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야겐은 아파오는 머리에 다시 천막 속으로 고개를 집어넣곤 소소하게 감상을 뱉었다.


“전혀 모르는 양식의 건물이었다.”

“그렇겠지. 여긴 아무래도 정말 일본이 아닌 듯하니까.”

“일본이 아닌가….”


야겐의 얼굴에 당최 의미를 모르겠는 유쾌한 미소가 어색하게 걸렸다. 카슈는 츠루마루와 야겐의 대화를 묵묵히 듣다가 다시 통신 기구를 꺼내 들었다. 둥근 회중시계 형태의 기계는 여전히 먹통이었다.


“하아….”

“아직도 연락은 안 되는 건가.”

“어. 아, 야겐, 쇼쿠다이키리의 상태를 봐주지 않겠어? 아무래도 조금 상태가 이상해서….”

“음? 이상하다니, 어디….”


엉금엉금 기어간 야겐은 맥을 짚고 열을 체크하더니 침음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많이 아픈 건가?”

“아니, 음, 이상하군. 이시키리마루, 잠깐 도와주지 않겠나?”

“뭔가 이상한 거니?”


머리가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걸어 이시키리마루가 야겐의 옆에 앉았다. 야겐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설명했다.


“신체적인 이상은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어. 그런데도 이 열이다. 뭔가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아.”

“음, 글쎄. 척 봐서는 그리 악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데 말이야….”

“그런가? 그럼 단순한 피로일 뿐인가?”


이시키리마루가 제 본체를 만지작거리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슬쩍슬쩍 보이는 것은 있었다. 다만 아주 살짝 보이고 사라져 버리기에 제대로 된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야겐과 이시키리마루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카슈와 츠루마루는 바라보았다.


“모르는 거야?”

“조금만 더 잘 보이는 곳이면 알 법도 한데 말이지….”

“그럼 밖으로 나가면-,”


츠루마루가 말하면서 천막 쪽으로 가까이 갈 때 돌연 마차가 멈췄다. 그리고 잠시 후 천막이 홱 걷어지면서 칭칭 싸맨 천을 벗은 금발의 청년이 말했다.


“도착했어. 내려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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