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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검난무/습작

1. 내 혼마루.

쟈근만월 2019. 2. 21. 23:47

길고 긴,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길지 않았던 것 같은 선배님의 혼마루에서의 견습 기간이 끝이 났다. 2년이니 길다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짧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정말 왜 정부는 견습 기간을 2년으로 해놓은 건지. 어찌됐든 정확히 견습 시작으로부터 2년이 지난 오늘 11월 26일 나는 드디어 선배님의 혼마루를 벗어나 내 혼마루를 만들게 되었다.


내 혼마루라니, 경사스러운 일이지만 묘하게 기쁘지 않다. 어딘가 탐탁치 않은 내 표정을 보신 선배가 말하셨다.



"얼굴이 왜그래? 다른 애들은 자기 혼마루 생겼다면서 기뻐하던데. 넌 또 뭐가 문제냐?"

"선배, 저는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갑자기 뭐라는 거야?"



얌전해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입이 꽤 험하신 선배의 독설은 오늘도 변함이 없었고 나는 익숙하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자 선배는 질렸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는 나보다 먼저 나의 혼마루의 문턱을 넘어 마당으로 들어갔다. 누가 먼저 들어가든 이 혼마루는 내 혼마루이므로 딱히 상관 없어 그에 관해 기분 나쁘진 않았지만 마당에 서서 노골적으로 내 혼마루를 두리번거리는 선배의 태도는 기분이 나빴다. 때문에 나는 일부로 틱틱대는 말투로 선배를 쏘아붙이 듯 말했다.



"뭡니까? 어차피 똑같은 혼마루인데 뭐 그리 신기하다고 두리번대세요?"

"아, 기분 나빴어? 미안, 미안. 그냥… 내가 처음 시작할 때의 혼마루보다는 넓구나~, 해서. 신기해서 좀 봤지."

"선배는 그릇이 작으셨군요?"

"시끄러워, 임마."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선배에게 딱콩을 맞았다. 나는 분명 빨개졌을 게 분명한 이마를 가리고는 멀뚱히 마당에 서서 아직도 외관 구경만 하는 선배를 불렀다.



"안 들어가세요?"

"안내를 해줘야지. 내가 네 혼마루 구조를 어떻게 아니?"

"…아. 알겠습니다. 따라오세요."

"야, 방금 너 까먹고 있었지. 기본 중에 기본이잖아. N의 혼마루의 구조는 N밖에 모른다. 아무리 연수한지 1년이 지나간다고 해도 이런 중요한 건 기억하자?"



너도 언젠가는 견습을 받을 때가 올거니까 말이야.

약간 황당해하는 선배의 말은 내게 딱히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제 막 초기도를 현현시키려는 참인데 갑자기 견습이라니. 멀어도 너무 멀다.


그러니 난 대충 대답하며 혼마루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선배도 묵묵히 내 뒤를 따라온다. 어, 그러니까, 도검 현현시키는 곳이...



"설마 모르는 건 아니지?"

"아마 아닐걸요?"



나는 좀 더 고민해 보았다. 도검 현현시키는 방을 뭐라고 했더라? 어, 대장간? ...아냐, 이건 아닌 것같아. 테이레실, 은 봉봉이로 두드려주는 곳이고...

...

음...


나는 고민을 그만뒀다. 어차피 좁은 혼마루인데 걷다보면 나오겠지.



"웬지 이쪽일 것 같아요."

"제대로 안내하는 거지?"

"물론이죠."



당당하게 말했지만 사실 거짓말이다. 진짜 그냥 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구잡이로 걸어간 끝에 있던 건 대장간, 아니 단련소, 아니 아무 것도 없는 휑한 방이었다. 내가 열어놓고도 깜짝 놀랄만큼 아무 것도 없는 방에 선배 눈치를 살폈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들어온 것 같다.



"뭐야, 미적미적했던 것치곤 제대로 왔잖아. 자, 들어와. 앉아."

"뭔가 짜증나는 데요. 그 기묘하게 당당한 태도."

"내가 하루이틀 이랬나?"

"그건 그렇죠."



나는 선배의 옆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역시 기모노는 좀 불편했다. 걷기도 앉기도 힘들다. 견습 때에는 선배의 강요로 인해 언제나 기모노 차림이었지만 이제 내 혼마루가 생겼다. 나는 편하게 다닐 것이다.



"카슈 키요미츠 꺼내봐."

"베이진 않겠죠?"

"네가 조심만 하면."



나는 등에 매고 있던 기다란 케이스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그곳에는 그리 길지 않은 일본도가 한 자루, 곱게 흰 비단에 싸여 있었다. 나는 검을 들어 감싸고 있던 비단을 풀어내고 펼쳤다. 배운데로 검을 검집에서 빼어 펼쳐둔 비단 위에 반듯하게 평행을 이루도록 놓고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하아... 조금 긴장된다. 내가 긴장했다는 것이 많이 티가 났는지 옆에서 선배가 날 도닥여 주었다.



"괜찮아. 2년 간 내 아래에서 열심히 했잖아. 쓸데없이 긴장하면 될 것도 안된다?"

"알고 있어요."

"그럼 힘내라. 힘들다고 중간에 절대 영력 강도 내리지 말고. 타도 현현 때 흘려보내는 영력은 전체의 50,60퍼센트 정도니까. 그리 힘들지도 않으니까 끝까지 유지해라."

"네, 네."



등을 쓰다듬는 선배의 찬 손길에 뻣뻣한 어깨가 더 뻣뻣해 졌다. 제 손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는지 선배는 겸연쩍게 손을 내렸다.


나는 다시 한 번 더 창문도 양초나 전등 같은 불빛도 없어 어둑어둑한 방안에서 빛나고 있는 카슈 키요미츠를 바라보았다. 현현, 보는 것만 많이 했지 직접하는 건 처음이다. 무릎 위에 내려놓은 손바닥에 땀이 차오른다.


하아. 한 번에 끝내자. 눈을 한 번 감고 뜬 나의 눈은 결연했다. 망설임 없이 빠르게 도신에 손바닥을 겹치고 눈을 감고 천천히 영력을 흘려보내며 속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카슈, 키요미츠... 카슈, 키요미츠... 카슈, 키요미츠...'

'나 불렀어?'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눈이 반짝 떠졌다. 그리고 보인 것은 찬란한 백색으로 물든 검과 사람의 모양을 갖춰 가는 빛의 덩어리였다. 너무나도 눈부신 광경에 눈을 감았지만 선배가 내 어깨를 세게 붙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감지 마. 기념적인 첫 현현이라고? 눈부심 때문에 놓쳐버리면 너무 아깝잖냐."

"..."



내가 알고 있는 카슈 키요미츠의 외관과 빛무리가 상당히 유사해졌을 때, 나는 처음 내 혼마루가 생겼다는 말에 그리 기뻐하지 않았던 나의 본심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니, 알아버렸다. 이런 본심 알고 싶지 않았어...


내 혼마루가 생겼을 때에 약간 기분이 미묘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그냥 내가 일하기 싫었을뿐이다.



'영원히 견습으로 남고 싶었어...'



하지만 그것도 이제 늦었다. 완전히 사람의 형태를 갖춘 빛무리, 도검남사가 눈을 뜨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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