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검난무/습작

2. 카슈 키요미츠.

쟈근만월 2019. 2. 22. 00:31

끝이구나. 나의 편안한 생활이. 아니, 일하기 싫다는 그런 중요한 본심을 현현 직전에 깨달으면 도대체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건지. 이미 초기도가 무사히 현현하므로서 내 편안하고도 안락했던 견습 생활은 종이 쳤는데 말이다. 그러니 나는 점점 빛이 사그라들고 모습을 들어내고 있는 카슈 키요미츠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빛이 완벽하게 녹아내리고 등장한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카슈 키요미츠에서 한 치 다를 바 없는, 붉은 제복과 하얀 피부의 카슈 키요미츠였다. 소년의 모습을 한 그 검은 어두운 주변을 순진하게 두리번거리고는 정좌하고 가만히 앉아있는 우리 둘에게 눈을 돌렸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지 그저 신기한 건지 몇 번 목을 가다듬던 카슈 키요미츠는 방긋 웃으며 나를 확실하게 바라봤다. 그 순간 나는 빨간 눈이 마치 보석 같이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아-, 강 밑의 아이입니다. 카슈 키요미츠. 다루기 힘들지만 성능은 좋으니까. 그래서, 내 주인은 둘 중 누구?"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한 눈치로 저렇게 물어온다. 좋은 목소리와 좋은 얼굴이 시너지를 일으켜 나는 그만 어떨결에 손을 들고 말았다. 옆에서 선배가 히죽히죽 웃는 게 보인다.



"나, 나, 입니다."

"역시 그쪽인가! 잘 부탁해!"

"자, 잘 부탁해..."

"잔뜩 귀여워해 주는 거다?"



응. 선배네 카슈 키요미츠와 한치 다를 바 없는 하이 텐션, 귀여움 중독자 카슈 키요미츠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떨리는 건지. 내 손바닥은 이미 다시 축축해지고 있었다. 꽉 잡고 있는 손이 땀범벆이라 기분이 나쁠 텐데도 끝까지 놓지 않고 방방 들떠서 웃는 카슈 키요미츠는 참 좋은 도검이라고 생각한다.


카슈 키요미츠에게 붙잡혀 어색하게 눈동자만 굴리다가 아직도 히죽히죽 웃는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곤란해하는 걸 계속 보고 있었음에도 한 마디도 꺼내지 않고 기분 나쁘게 웃으며 방관하는 선배는 참 나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불순한 생각을 한 게 들켰는지 선배의 눈초리가 한 순간 사나워졌다. 나는 급하게 카슈 쪽으로 눈을 돌리며 해명했다. 아니에요, 선배 욕같은 건 하나도 안 했다고요! 이 자의식과잉! 하지만 의외로 선배는 날 도와주려는 듯하다.



"자, N네 카슈는 좀 진정해. 곤란해 하잖아?"

"주인, 곤란해?"

"어, 그, 굳이 따지자면 곤란하지...?"



나는 이 때 카슈 키요미츠의 폭주를 막아준 선배에 대해 감사하고 있었다. 역시 선배, 겉멋으로 선배를 하고 있는 게 아냐! 역시 선배란 건 후배가 곤란해 하면 도와주는 친절한 사람인 거죠? 와아, 선배가 너무 친절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그러니까, N도 곤란해 하니 좀만 교류는 천천히."

"천천히 할까?"

"아, 응..."

"그래도! 아무리 교류를 느긋하게 한다 쳐도 서로 통성명은 해야 하지 않겠어?"



뭔가 좀 이상하다. 나는 방긋방긋 웃고 있는 선배를 바라보았다. 수상해. 뭔 흐름으로 만들 생각이야.



"그러니까 나는 이제 빠져 줄게. 이 방에서 서로 통성명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조금은 서로에 관해 알아가 봐!"

"아?!"

"힘내, N! 초기도와의 신뢰는 중요하다? 그럼 이만! 나중에 이야기 다 끝날 때 쯤이면 다시 들어올게!"



도와주기는 개뿔. 선배는 역시 재활용 불가능의 쓰레기였다. 벌떡 일어난 선배의 옷깃을 급하게 잡았다. 그러곤 나를 내려다보는 선배에게 보일만큼 작게 도리질을 치며 필사적으로 내 주장을 전달했다. 무리에요! 무리라고, 이 쓰레기야! 우리 처음 만난 날을 기억은 하세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3시간 동안의 침묵은 기억하냐고요!


그리고 내 모든 메세지를 전달 받은 선배는 상큼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잡았다.



'힘내.'



그리고 소리는 내지 않고 입술 모양으로만 저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창문 하나, 전등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이 방에 홀로, 아니 어색하기 그지없는 카슈 키요미츠와 단 둘이서 남게 되어버린 것이다. 용서 못해. 절대 용서 못해. 선배네 카슈에게 선배가 우리 쪽 카슈를 더 귀여워 했다고 흘려주겠어.


그렇게 다짐하고 있을 때 뒤에서 예쁜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 우리, 다시 한 번 통성명 할까?"



수줍게 웃는 카슈 키요미츠가 보였다.


...선배 진짜 싫어.